한국사학계에서 지역사 연구가 활성화된 시점은 대략 1980년대 이후이다. 1960년대 이후 향토사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발 딛고 살던 고장의 위대함을 발굴하는 연구 경향이 생겼다면, 1980년대부터는 전문 연구자들 이 중심이 되어 각 지역의 동향이 어떻게 전국적 흐름과 연결되고 그 가운데 지역민중은 어떠한 움직임을 보였는지 규명하기 위한 연구들이 등장했다. 민중의 처지와 실천을 더욱 세밀히 들여다보기 위한 지역사 연구가 시작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민란, 사회운동, 인민위원회 등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들을 바탕으로 우리는 지역에 대해서 더 많은 지식을 쌓게 되었다.
지역사 연구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몇 가지 복잡한 감정이 든다. 지역사 연구가 중요하다고 누구나 말하지만 정작 ‘진짜 역사학’은 국제관계사나 전쟁사 같은 민족국가사라는 분위기가 은연중 지역사 연구를 주눅 들게 한다. 지역사 연구는 지역에 근거지를 둔 연구자들이나 하는 것으로 취급하는 시선도 없지 않다. 오랫동안 축적된 지역사 연구를 민족국가사의 시선에서 개별적 사례로 흡수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지역사 연구에 문제가 없을 수는 없다. 지역 연고자들이 지역에서 생존 하기 위해 관례적으로 지역사의 길에 접어들기도 하고, 지자체와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지역사이되 실제 내용은 민족국가사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지역사가 나타나기도 한다. 어쩌면 기성 연구자들의 대다수는 한 번쯤 ‘알바’라는 명목으로 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지역사 연구에 발을 담그는 방식으로 ‘지역 권력’을 강화시키는 데 기여하는 지역사를 함께 만들어왔다. 지역과 중앙의 위계에 대한 비판적 입장도 없이, 지자체의 역사 정치를 고려 하지 않은 채 평면적으로 지역사를 재현해온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1980년대 이후 등장한 지역사가 1960년대 향토사와 유사해지는 방향으로 퇴행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가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된다.
창립 이후 지역사 연구에 많은 관심을 쏟아 왔던 우리 연구소는 2025년 11월 ‘트랜스 로컬리티: 지역사의 경계를 다시 생각한다’라는 제목의 학술 회의를 개최했다. 지역사 연구의 여러 가지 과제 가운데, 지역사는 과연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연구되어야 하는가, 실제 지역사회에서의 움직임은 행정구역과 어떠한 상관성을 갖는가, 이를 바탕으로 한 역사와 기억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역사연구』 제56호의 특집은 학술회의에서 발표되었던 네 편의 글이 당일의 토론과 논문 심사 단계를 거치며 가다듬어져 나온 결과물이다.
강성호는 일제하 전남 순천군 동초면과 황전면을 중심으로 행정구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생활권의 형성과 의미를 분석했다. 그는 두 지역의 사례가 단일한 행정 단위로 환원될 수 없는 비균질적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며, 지역을 이동과 교류, 실천을 통해 구성되는 유동적 공간으로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 김일수는 1930년대 초 대구지역 사회운동의 지역 내외로 펼쳐나간 연대 투쟁을 중심으로 지역사회운동사의 틀을 짜고자 했다. 격문 발송·배포와 같은 투쟁은 현대의 사회연결망을 통한 연대 표명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현명호는 1920~30년대 신문사 탐승단의 여행기사를 정량적으로 분석하여 탐승 지역이 점차 넓어지는 현상을 분석했다. 탐승의 권역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면서, 지역을 실재하는 행정구역에만 가둬둘 수 없다는 문제 의식 가운데 유동적 구성의 가능성을 포착했다. 정계향은 울산 방어진 주민들을 중심으로 식민지에 대한 기억의 문제, 도시재생사업 당시 일본인 거리 조성을 둘러싼 역사 재현 문제 등을 연구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인 이주어촌이라는 독특성으로부터 비롯된 혼종성을 적극 드러내는 방식으로 식민지 역사에 대한 평가와 인식이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상과 같이 네 편의 글은 지역을 다루는 방법과 소재는 각기 달랐다. 면 단위에 주목하는가 하면 전국을 단위로 삼거나 생활권에 착목하고 운동의 범위에 집중한 사례도 있다. 또는 지역이 여행을 통해서 구성된다는 관점도 있었으며, 한 지역 안에서의 초민족적 혼종성을 분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범박하게 정리하자면, 이들은 행정을 위 해 구획된 지역이 단일한 하나의 색깔로 그려지기 어렵다는 점을 제기한다. 오늘날의 행정구역 또는 그 성격이 역사 이해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번 특집은 특정한 방향으로의 변화를 제시하기보다 현재를 성찰하는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데 의의가 있다.
한편 제56호에는 네 편의 일반논문이 수록되었다. 박지현은 국가기록원에 소장된 1922~1923년 울산군 위생행정 공문서를 분석하여, 식민지 위생행정이 지역 현장에서 어떠한 절차와 방식으로 집행되었는지 규명했다. 경찰 행정과 일반 행정의 역할 분담 구조를 밝히고, 민족차별적 의료 행정의 실태를 수치로 입증하고자 했다. 윤상현은 수운 최제우의 운수론이 역 동적 변모 과정-즉 순환론에서 조물자와의 관계라는 새로운 지평으로-을 거치면서 형성된 것임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를 조선 민중의 신성내재적 주체화의 사상적 토대로 분석한다. 이창섭은 1952년부터 1955년 사이 미국식 농사 교도사업의 재도입 과정에서 외래 기술 전문직주의와 한국 관료제 사이의 관계를 살폈다. 1957년 농사교도법 제정 이전 시기를 단순한 제도적 공백기가 아니라 외래 교도 모델과 기존 행정 질서가 충돌·절충하며 새로운 교도 인력과 지식 체계를 형성해 간 제도적 각축의 시기로 평가하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이주연은 해동청이라는 매의 특정 품종을 소재로 이 매가 10세기부터 15세기까지 동아사 정치 외교에 중요한 매개체로 기능했음을 살폈다. 이를 바탕으로 물질과 의례, 권력의 상호작용을 규명하고자 했다.
『역사연구』가 매호 빠뜨리지 않고 담으려는 원고가 논문으로 쓰긴 어렵더라도 역사 연구에서 만나는 중요한 감상·판단들을 독자와 함께 나누려는 시도를 담은 글들이다. 최익한에 대해 장기간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송찬섭은 최익한이 아들의 죽음을 추모하며 쓴 한시를 분석하여 가족사를 분석했다. 근대사 연구자들이 놓치고 있는 자료 중 하나가 신문 잡지 등에 수록된 한시를 비롯한 한문 문헌이라고 생각한다. 아들의 일대기를 응시하고 있는 ‘곡아이십오절’은 그 내용만으로도 인문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글이고, 이에 대한 송찬섭의 섬세한 해석이 더욱 흥미를 높인다. 정광필은 배항섭의 『19세기 민중운동과 정치문화』(2025)를 대상으로 한 연구소 북토크 (2026년 5월) 참관기를 써주었다. 독자들에게 북토크 소식을 발빠르게 전달해주기 위해 노력한 수고와 역사 연구자로서 본인의 고민을 진솔하게 남겨준 점이 고맙다.
다음호 제57호는 1926년 6월을 뜨겁게 달구었고, 2026년 5~6월도 조금은 다른 복합적인 열기로 달구었던 6·10만세운동을 특집으로 정했다. 제56호를 위해 힘쓴 여러 필자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더운 여름 모두들 건강하시길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