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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에세이] 친일시 한 바닥의 무게는?

작성자
송찬섭
작성일
2017.09.14
첨부파일0
조회수
2106
내용

친일시 한 바닥의 무게는?

 

좋아하는 노래에 홍순관의 쌀 한톨의 무게가 있다. “쌀 한톨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내 손바닥에 올려놓고 무게를 잰다/ 바람과 천둥과 비와 햇살과/ 외로운 별빛도 그 안에 스몄네/ 농부의 새벽도 그 안에 숨었네/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었네/ 버려진 쌀 한 톨 우주의 무게를...”

서정주 전집 완간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상당히 놀랐다. 작업에 참여하였던 한 평론가는 서정주 문학에 대한 평가에서 잠실종합운동장의 잔디밭에 잡초 서너 개가 있다고 해서 잔디밭 전체를 뒤집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비유하였다. ‘잠실종합운동장의 잔디밭과 잡초는 그가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유산이라고 자랑하는 서정주 작품과 그가 썼지만 의미를 붙이고 싶지 않은 친일시를 대비한 것이다. 그가 쓴 친일시가 10편은 된다고 하니 친일시 한 바닥이 잡초 하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 되는 셈이다. 또 한 사람은 서정주의 연륜이나 위상으로 봐서 친일시보다 훨씬 추한 전두환헌시를 그가 역사적 정치적으로 너무 순진하기 때문에 썼다고 한다. 본인들은 이런 강변이 스승을 얼마나 웃음꺼리로 만드는지 정말 모르는걸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걸까? 서정주에 대한 비판은 어쩌면 본인이 글을 썼다는 사실보다 그가 세상을 뜰 때까지 그 일에 대한 반성을 거부했다는 점이 더 클 듯하다. 여기에는 한편으로 해방 후 친일청산이 되지 않아서 뼈저리게 반성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 점도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이번에 느낀 점은 스승을 마치 교주처럼 높이기만 하고 제대로 비판(아마도 비판한 제자들은 내쳤을 수도 있겠지만)하지 못한 탓도 적지 않을 듯하다. 덧붙여 이번 신문기사의 의도성을 짐작해 보았다. 마침 그 신문도 친일에서 대단히 자유롭지 못한 신문이어서 어쩌면 제자들의 입을 빌어서 자기들(신문과 社主)이 행한 친일도 잡초 하나 정도 일뿐이라는 변명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친일시 한 바닥의 무게는? 한 편의 친일시(그리고 친독재시)도 시인에게는 자기세계의 전부라고 보고 싶다. 너무 심한 평가가 아닐까, 그가 쓴 좋은 작품들이 수없이 많은데? 어떤 인물이든 그의 전체상은 그가 지닌 여러 가지 사상이 서로 겹쳐서 형성된다. 그런 점에서 친일시 또한 그를 형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 가운데 하나이면서 그의 세계의 전부이기도 하다. 그 자신은 큰 망설임없이 시를 썼을 수는 있지만 시인의 사명에서 그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의 동생 서정태 시인은 그 무게를 잘 안 듯하다. 그는 전두환이 축하시를 부탁하자 단호하게 "저는 시를 쓰는 시인이지, 서커스 광대가 아닙니다."라는 말로 거절했다고 한다. 쌀 한 톨의 무게가 왜 우주에 비교되는지 잘 생각해 보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 일은 과거 행위에 대한 단죄의 측면이 아니라 심성의 회복이라는 차원이라고 말하고 싶다. 미당이 해방후 그런 마음을 취했으면 과오에도 불구하고 더 큰 시인이 되었을테고, 그가 비록 그러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제자들이 그런 마음을 취했으면 스승의 과오를 어느 정도 덮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제자들은 이번 전집 완간을 계기로 스승에 대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기대한다고 하였지만 진정 그러고 싶었다면 먼저 전집에 그의 모든 작품을 넣으라고 충고해 주고 싶다. 아마도 사방에서 크게 격려를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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