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소식         자료실

[역사연구] 54호 발간보고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34
안녕하세요. 역사학연구소입니다. <역사연구> 54호(2025년 9월호)가 발간되었습니다.

이번 호에는 "식민지 조선을 뒤흔든 유령, 조선공산당" 특집논문 4편, "한국 사회주의의 실천과 사상" 특집논문 4편, 일반논문 9편, 이현진 연구원의 역사수상이 실렸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책머리에를 참고 부탁드립니다.

-----------------------------------------------------

  후대의 역사가가 2025년 1년 동안 한국학계에서 발표된 저서와 논문의 주제를 정리한다면, 특기할 만한 점 가운데 하나가 한국 사회주의 연구의 약진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일차적으로 올해가 조선공산당(이하 ‘조공’)과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 KAPF)의 설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나타났다. 여러 학술지가 다양한 특집을 꾸렸고, 3년 전부터 신진연구자의 연구를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한국사회주의연구기금 운영위원회가 학술회의를 주관하기도 했다. 또한 ‘한국 사회주의 사상‧문화사 총서’가 출간되었으며, 『붉은 시대』가 국내 독자에게 번역 소개되었다. 2025년을 어느 정도 의식한 결과물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사회주의 연구의 증가를 주기에 맞춘 학술적 기획만으로 설명하긴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연구가 어느 순간 갑자기 이루어질 수 없을진대, 하고 싶은 말들이 쌓이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주요 주제가 되었다고 보는 게 생산적이다. 그렇다면 여러 연구가 담고 있는 문제의식은 무엇일까. 후대의 역사가가 본격적으로 답해야 할 과제이겠지만, 『역사연구』 2025년 9월호(통권 54호)에 실린 두 개의 특집을 통해서도 오늘의 한국학계가 말하고 있는 한국 사회주의의 일단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첫 번째 특집 ‘식민지 조선을 뒤흔든 유령, 조선공산당’에는 2025년 4월 한국사회주의연구기금 운영위원회가 주관하고 역사학연구소‧역사문제연구소‧한국역사연구회가 주최한 조공 창당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의 결과를 모았다. 네 편의 논문은 1920년대 조선에서 조공을 창립하고 해체 이후 재건하기까지의 움직임을 일목요연하게 분석했다.
  임경석은 국제공산당과의 관계 아래 공산당 결성을 위한 크게 네 번의 시도가 있었다고 하면서, 1924~1925년 사이의 네 번째 창당운동을 집중 분석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출현한 당준비회에 의한 대통합론, 서울에서 조직된 13인회의 내지통합론, 그리고 4월당준비회의 소통합론 등이 창당 방법으로 제시되었다면서, 조공 출범이 국제공산당 동방부의 지도성을 인정하는 국내 기반의 우수한 공산그룹들이 연합(소통합론)으로써 가능했다고 파악했다.
  박종린은 1925년 후반기부터 1926년 말까지 당 통일운동에서 제기된 통합 논리와 조공 제2차 당 대회를 검토했다. 통일적 전위당의 조직 방침으로 양당통합론, 제3당론, 분리‧결합론이 제기되었다면서, 코민테른의 조공 승인, 조공 제2차 탄압사건을 거치며 분리‧결합론을 주장한 ML파가 파벌 청산과 사회주의운동 통일을 이끌었고, 조직적‧이론적 측면에서 한국 사회주의운동에 미친 영향을 중요하게 보았다.
  윤상원은 1927년 12월(12월당)과 1928년 2월(2월당)에 각각 개최된 조공의 제3차 당 대회에 주목하여, 어떻게 제3차 당 대회의 의미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인지 문제제기했다. ‘두 당 대회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는 일은 양비론과 양시론이 될 수 있다’면서 절차적 정당성을 중심으로 평가할 때 12월당이 우위에 설 수 있지만, 향후 누가 더 적극적으로 투쟁했는지를 중심으로 12월당과 2월당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명혁은 1928년 코민테른 제6차 대회 이후 12월 결정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분석했다. 이 가운데 12월당, 2월당, ‘김단야 그룹’ 등의 조선혁명에 대한 견해를 집중적으로 살펴보면서 당재건운동의 전개 과정까지 검토했다. 코민테른 조선위원회가 김단야의 주장에 크게 의존하면서 두 당의 당 대회를 인정하지 않은 한계를 지적하며, 이로 인해 당재건운동 과정에서 사회주의자 사이의 과열 경쟁이 발생하게 된 문제점도 함께 비판했다.
  이상의 논문은 조공의 역사에 대한 현재까지 연구 성과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조공이 국제당과의 관계, 국내 공산그룹 사이 대립 가운데 설립‧운영되었음을 보여준다. 임경석은 이러한 조건들 때문에 조공 창립 과정이 장기성과 복잡성을 띠었다고 지적했는데 주목할 만한 통찰이다. 네 편의 논문들이 모두 각 시기 코민테른의 태도와 사회주의운동의 성격을 규명하고 역사적 의미를 평가하고자 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2025년의 사회주의 연구가 한국 사회주의의 역사화에 주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 번째 특집 ‘한국 사회주의의 실천과 사상’은 한국사회주의연구기금을 수령한 신진연구자들의 연구 성과이다. 최보민은 1920년대 전반기 서울파 공산그룹의 노동운동론의 변화와 노동운동에 미친 영향을 검토했다. 순수 노동자 단결론으로부터 점차 노동자와 소작농민과의 연대를 중시하는 입장으로 바뀌어가며 조선노농대회 조직을 통해 고려총국 내지부의 조선노농총동맹 결성 움직임에 대응하는 양상을 살폈다. 김진웅은 1925~1926년 사이 안광천과 이헌을 중심으로 재일본 사회주의자의 동향을 검토했다. 일본 무산정당운동에 관심을 갖고 북풍회‧북풍파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조공 제2차 당 대회로 이어지는 움직임을 재조명하고자 했다. 김명재는 조선 사회주의자들의 사적유물론 인식을 원시사회에서 고대사회로의 이행 문제를 중심으로 검토하면서, 루이스 모건과 프리드리히 엥겔스로부터 비롯된 진화론적 사고가 개입되어 있음을 분석했다. 1920년대 중후반과 1930년대의 차이를 조하면서 생산력의 발전과 도구‧기술의 변화 등에 주목했다. 마지막으로 허현주는 1945~1946년 사이 기관지 『해방일보』를 대상으로 해방 이후 조공의 선전 활동을 살폈다. 신탁통치 파동을 계기로 선전 방침이 변화했다는 점, 『해방일보』를 통한 통신망 구축 기획이 미군정의 언론 통제와 탄압으로 좌절되었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네 편의 논문은 다양한 주제에 걸쳐 있지만, 한국 사회주의가 내부적으로 안고 있던 고민들(노농 연대의 방법, 무산정당 활용, 생산력 발달의 의미, 민족통일전선 정책)을 다루었으며, 이를 어떻게 현실에 적용하려 했는지 세밀하게 연구했다. 첫 번째 특집이 국제당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당 조직 논의를 다루었다면, 두 번째 특집은 사회주의의 대중적 영향력을 규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는 한국 사회주의를 역사화하는 또 다른 측면으로서 근현대사 곳곳에 스며든 사회주의의 모습을 탐구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한편 이번 호에는 9편의 일반논문이 게재되었다. 남기현이 대한제국 시기 공토 확장 정책으로 인한 지역사회 갈등 양상을 검토했고, 윤민혁이 조선총독의 입법권을 메이지헌법의 통치권 해석의 연장선상에서 분석했다. 최윤은 1910년대 다른 지역에 비해 함경도에서 사립학교가 존속할 수 있었던 요인을 살폈으며, 류시현은 1920년대 ‘주지’라는 표현의 사용을 통해 상식의 구성 과정을 검토했다. 김영미는 식민지기 미성년자 음주 금지 법제화를 둘러싼 논의를 제국-식민지 관계를 중심으로 접근했고, 최규진은 일제하 학교교련의 전체상을 규명하며 황국신민화의 성격을 파악하고자 했다. 최태육은 민간인과 정치인 사찰 등의 역사적 배경으로서 정부 수립 직후 특무부대의 운영 양상을, 최혜진은 1950년대 도시화 현상 가운데 향토음악 담론과 향토 개념의 변화를 분석했다. 김은경은 미국으로 입양되었다가 한국으로 귀환한 장애 여성의 구술생애사를 통해 입양 당사자의 ‘생존의 역사’를 가시화하고자 했다. 지면 관계상 모든 논문을 자세히 소개할 수 없음을 양해 바란다.

  마지막으로 ‘역사수상’ 코너에 역사학연구소 답사에 참여한 이현진 연구원의 순천‧벌교 답사기를 실었다. 순천지역사 연구자 강성호 연구원의 상세한 안내로 풍성한 답사가 될 수 있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순천‧벌교지역에 관심 있는 분들께 유용한 답사 정보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상 여느 때보다 두꺼운 한 권의 학술지를 세상에 내놓으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동료 연구자와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