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연구』를 또 한 권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논문 투고 기한을 공지하고 논문 심사를 진행하고 편집위원회가 여러 가지 코너를 기획하다 보면, 금세 4개월이 지난다. 그 사이 우리 주변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2024년 12월 3일 이후 전도된 일상을 다시 회복할 기회가 마련되었다. 부디 새로운 정부가 역사학 연구자들의 자유로운 학문 연구의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역사연구』 제53호(2025년 5월호)에는 4편의 특집논문, 3편의 일반논문, 3개의 서평, 역사학연구소 북토크, 역사수상 등을 수록했다.
‘해방 공간과 ‘새교육’의 길’이라는 제목의 특집은 2024년 11월 우리 연구소에서 개최한 학술심포지움 발표를 한 단계 발전시킨 결과물이다. 『역사연구』를 통해 『조선교육』과 『새교육』을 수년 동안 읽어온 ‘교육사반’의 성과를 소개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홍선이는 해방 직후 조선교육연구회의 실질적 구성과 『조선교육』의 사상적 지향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조선교육연구회가 ‘방법으로서의 민주주의’, ‘내용으로서의 조선학’을 결합하려고 노력했지만, 단독정부 수립 이후 그와 같은 지향이 반공민족주의로 급격히 전환되었음을 살폈다. 다음으로 김광규는 1947~1949년 시기 조선교육연합회의 『새교육』과 민주교육연구회의 『조선교육』에 게재되었던 교사상을 분석했다.
손석영은 해방 직후 ‘미국식 민주주의’ 계열, ‘민족적 민주주의’ 계열, ‘진보적 민주주의’ 계열의 국사교육 논의를 검토했다. 또한 세 가지 계열이 상호 간에 충돌하면서도 일정 부분 타협과 혼종의 형태로 사회생활과 역사 교수요목에 반영됐다고 보았다. 한편 한상아는 패전 직후 일본의 역사교육을 분석했다. 이를 위해 1946~1955년 사이 中教出版株式会社가 발행했던 『中等教育』, 『新しい教室』에 담긴 논설을 살펴보았다. 보수적 경향의 ‘올드 리버럴리스트’와 진보적 성격의 ‘진보적 문화인’은 ‘민주주의 교육’에 대하여 표면적으로 상반되는 듯하였지만, 공통되게 전시기 경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여 ‘민주주의 교육’을 절차적, 형식적으로만 수용하였다고 보았다.
해방 공간 한국의 상황을 분석한 논문 3편과 패전 직후 일본 역사교육을 검토한 논문 1편으로 구성된 이 특집은 당대 교육정책의 내용과 성격을 보여주면서 민주주의의 복잡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 논문들을 통해 모두가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가운데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방식의 다양성을 일차적으로 목격할 수 있다. 교육사 연구 성과를 『역사연구』에 게재하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은 교육사가 교육행정 당국, 학교 관계자, 교사, 학생들에 대한 연구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선교육』과 『새교육』에 당대 최고 수준의 학자들의 글이 수시로 실리는 것을 보면서, 현대 교육이 한국사회의 행정시스템과 국가운영 원리, 학문과 지식 등이 모두 교차하는 지점에 놓여 있다는 점을 고민하게 되었다. 이번 특집 외에도 ‘교육사반’ 구성원들이 후속 학술회의를 기획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의 행보도 기대하는 바이다.
일반논문은 홍순권, 황동하, 이창섭의 논문으로 구성했다. 홍순권은 일제하 부산부직업소개소의 운용이 도시 실업 문제와 동시에 일본 도항 문제와 관련되어 있음에 주목하면서, 직업소개소가 일제의 도항정책에 호응하면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었음을 분석했다. 황동하는 일제시기 『매일신보』가 소련을 혐오와 공포가 뒤섞인 이미지, 나아가 인륜을 모독하거나 민족을 탄압하거나 세계를 ‘적화’하려는 이미지로 표상했음에 주목했다. 식민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련지’의 형성 과정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방 이후와의 연속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연구 성과이다. 이창섭은 한국전쟁기 이승만 정권의 농업지도요원 육성사업을 검토하면서, 이 사업이 농촌 재건을 통한 농민 안정화 대책의 일환으로서 등장하였고, 이승만 정권이 농촌·농민 통제를 통하여 통치력을 확대·강화하려 했던 사회정책적 농정책이었음을 확인하였다.
이번 호 『역사연구』에도 연구자들의 소통을 촉진하기 위한 서평과 연구소의 활동을 지면으로 공개하기 위한 기획을 담았다. 김이경은 오미일의 『한국 협동조합운동의 역사와 시대정신』에 대하여 평했다. 그동안 연구되지 않았던 소재를 통시적으로 연결하여 근현대 협동조합운동사를 맥락화한 의미에 주목했다. 조민지는 박정미의 The State’s Sexuality: Prostitution and Postcolonial Nation Building in South Korea에 대한 서평을 보내 주었다. 처음부터 영어로 기획·출판된 이 연구가 한국학의 국제적 전개에 미칠 영향과 국가·자본·젠더의 교차점에 대한 연구 성과로서의 의의를 높게 샀다. 정일영은 남화숙의 『체공녀 연대기, 1931-2011』를 소개하면서, 자신의 진솔한 경험담을 서두에 실어 글에 대한 공감을 더욱 자아내었다. 바쁜 와중에도 서평 의뢰를 흔쾌히 수락해준 세 분의 연구자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한편 지난 호에 이어 이번 호에도 역사학연구소 북토크의 녹취록을 정리하여 수록했다. 4월 김태웅 연구원이 역해한 오지영의 『동학사』를 대상으로 김태웅, 천수진, 배항섭의 토론을 진행한 결과물을 「동학사: 새 세상을 꿈꾼 민중을 기록한다」라는 제목으로 게재했다. 『동학사』 서술의 진위에 대한 논쟁이 오랫동안 끊이지 않았음을 알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반드시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이라고 확신한다. 다음으로 송찬섭 연구원은 ‘역사수상’ 코너에 임술농민항쟁 당시 발표되었던 각종 문건들을 자세히 분석했다. 「1862년, 갈등과 소통을 이끈 문건들」에는 통문(발문), 회문, 방서(게방) 등을 소개했는데, 오래 전부터 송찬섭이 진행해왔던 격문과 선언문들에 대한 연구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북토크 녹취록과 ‘역사수상’이 모 두 19세기 후반 민중운동사를 다채롭게 다루고 있어서 편집하는 입장에서 더욱 반가웠다.
이번 호도 충만한 읽을거리를 담았다고 자부한다. 다음 호인 통권 제54호(2025년 9월호)는 조선공산당 100주년을 맞아 식민지 조선의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기획을 준비중이라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앞으로도 『역사연구』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